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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全州金氏"의 淵源

槪要

ancient_01.jpg전주김씨는 왕손 중에서도 왕손이다.

임금(신라 경순왕)과 임금의 딸(고려 태조의 딸)에서 태어난 자식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5000년 역사에서 경주 김씨 "은열공"파와 우리전주 김씨가 그러하다.

경주김씨도 왕손이고, 전주이씨도 왕손이다.  그러나 이 두 성은 모두 아버지가 왕이었음에는 틀림없으나, 어머니 마저  왕의 딸이 될 수는 없었다.

왕손 중에서도 왕손이기에 오랜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에  많은 권세와 부귀영화를 누려왔다. 그러나 이러한 세도 이면에는 정략적으로 그에 못지 않은 견제를 받아, 모함에 휩쓸려 죽임을 당하는 선조들이 많았고,  천수를 누리는 선조들이 드물었다. 그러므로  자손들이 번창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끈질긴 생명력으로 버티어 온 전주김씨는 현재 남한에만  57,97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由來

ancient_05.jpg전주김씨의 시조 "태서공" 께서는 신라 마지막왕인 "경순왕"과  "고려 태조 왕건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4자 대안군 "김은열 공"의 9세 손이시다.

시조께서는 고려 고종조에서 문과에 급제하여 동 19년 (1232년)에 한림학사(왕에게 경서를 가르치는 관직)를 거쳐 추밀원부사(군사에 관한 일을 맡은 국방부 차관에 해당하는 벼슬), 상장군(정 3품 벼슬로서 오늘날의 대장에 해당됨) 등을 지내셨으며 문하시랑평장사(문하시중 다음으로 높은 벼슬로서 정 2품에 해당됨)와 보문각(경연과 장서를 맡은  국립도서관에 해당되는 관청) 대학사(관청의 장)을 역임하시었다.

고종 14년(1254년)에 식읍으로 받으신 경주 일대가 몽고군의 병화로 인하여 폐허가 되자 식솔을 거느리고 전주로 이거하여 살게 되었으며, 공께서 돌아가시자 조정에서는 고종에서 명종에 이르도록 요직을 맡아 공을 세운 명신이라 하여 "완산군"에 추봉하였으며,   이로서 후손들이 전주를 관향으로 삼게되었다.

고려에서 벌족으로 명성을 떨친 전주 김씨는 시조 "완산군"의 아들 3형제분이 모두 현달하여 명문 거족으로서의 기반을 다졌다.

장자인 若先
         당대의 세도가인 崔瑀(최우)(崔怡라고도 하며 최충헌의 자)의 맛사위요, 원종의 비인 경순태 후의 친부로 충열왕의 외조부로 추밀원부사를 역임하시어 그위세가 하늘을 치솟았으나,  모함에 의하여 섬에 유배후 사망케 되었다.

차자인 起孫은 
        요직중의 요직인 이부상서(내무부 차관급에 해당되는 벼슬)를  거쳐, 원종이 즉위하자  그 벼슬이 수상급인 문하시랑평장사에  이르셨으며, 1268년(원종 9년)에 돌아가셨다.

계자인 慶孫
         고종조의 명장으로 이름을 떨치셨는데 몽고군이 침입하자 정주분도장군이 되어 군사를  이끌고 용전하여 구주성을 수호하였고,  고종 24년에는 전라도 지휘사가 되어 경주성에서  초적 李 延年(이연년)의 난을 평정하였으나, 최항의  모함에 의하여 백령도에 유배, 연금되었다가 2년 후에 사망케 되었다.

 

朝鮮祖

ancient_07.jpg고려가 패망하고 이성계가 나라를 세워 왕이 되니, 고려조에서 요직을 맡아 왕에게 충성을 다하던 종친들께서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하여 모든 관직을 뿌리치고, 주로 장자인 약손 후손들이 식솔들을 이끌고 산이 많고 지형이 험한 산악지방인 함경도와 평안도에 대거이주하여 초야에 묻혀 집중 세거하여 북한의 일문을 이루고 있으며

성종 때 여진 정벌에 공을 세우신 "敬"께서 북방수어장으로 경원성주의 왕명을 받들어 아들 4형제를 데리고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 후손들이 함경도와 평안도에서 많은 자손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지방에 세거하면서 크게 번성하였다.   그로 인하여 "敬"을 入北中始祖로  받들고 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던 "達渾(달혼)"의 후손들이 오늘날 경북의 의성과 안동에서 집중 세거하고 있어 남한일문을 이루고 있다.

 

近代

구 한말 함경도와 평안도에서 성족을 이루어  세거하던 종친 상당 수가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여, 가족과 고향을 등지고 만주 일대에서 독립 운동을 하였으며, 천신만고 끝에 조국이 해방을 맞자 희망과 자유의 꿈을 안고 다시 고향을 찾았다. 그러나  다시 이어지는 공산 치하의 억압에 고통과 절망으로 신음하다가,  6.25 동난을  격으면서 1.4후퇴를 전후하여 많은 종친들이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이주 하게되었다.   지금은 전국 주요 도시 등에 산거하여 정치, 경제, 사회, 학계에서   많은 활약을 하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인물들은 김재순 전 국회의장,  김연준 전 한양대학교   총장, 김광식 시인,  김진섭 종친회 부회장(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가수 패티김,  김영팔 전 서울 강서경찰서장,  김영구 서울대 교수 등등이 있다.

또한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일가가 전주 김씨라고 하고 있으나, 그들의 직계 선조들이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현재 남한에 상존하는 족보상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나 김일성 주석도 생전에 자신의 본관이 "全州"임을 밝힌 바 있으며, 김정일 위원장은 2000년 9월 방북한 남한 언론사 사장들과의 오찬 회동에서 "남쪽에 가서 그곳(시조 태서공의 묘가 있는 완주 모악산)에 갈 수 있으면 시조묘를 참배 하겠다."고 밝히는 등의 그 정황으로 보아 사실로 인정하는 것이 옳을 듯 싶다.

1985년도 인구 조사에 의하면 남한에는 12,437 가구에  인구 52,25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었다. 그로부터 15년 후인 2000년도 인구 조사 결과에 의하면 18,126가구에 57,979명(남 29,290명,  여 28,689명)으로 조사되어 5,728명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3.  08. 15.  

                                                                                                                 김 영 팔  씀

 

                     ** 참고문헌 : 김관택(1994), 전주김씨세보, 서울:한국족보도서관
                     ** 자료출처 : 조선일보 -NK리포트- 2000/10/08(일)
                     ** 자료출처 : 통계청 homepage(행정구역(구,시.군,)/성씨 본관)

                     **  감    수  :  金柄吾 선생님(서울  新明  中學校  國史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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